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幄手).

-- 윤동주 --


갑자기 이 시가 계속 떠 오릅니다.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나 이 구절이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 데 이리 맘 편하게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용비불패 (외전 아님) 거의 마지막에 근접했을 때 대장군과 용비가 했던 이야기도 생각이 납니다.

"면죄부를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줄 것이다. 적어도 그대에게 만은.."

나와 주변의 몇몇 사람들만 면죄부를 받은 것 같은 이 느낌

나만 편하게 산다고 해서 세상이 온통 밝은 것도 아니고 나 또한 우울하게 산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 하나도 없을 테지만 그냥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면하고 나만 잘 살고자 해도 되는 것일까? 또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나 또한 자본의 노예가 된 지 오래전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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