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 과학도 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과학자라고 하기도 하지만 박사 학위가 없는 관계로 살짝 꿀리네요.) 그래서 증거 없이는 잘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대표적으로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학이란 일반적으로 양의학을 지칭하는 말이며 한의학은 경험상의 '유사 의료행위'일 뿐이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자 이제부터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니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98년도 부터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재밌던 시절이라서 겨울 내내 타고 나면 왼쪽 팔목이 항상 삐어 있었습니다. (오른손 잡이라 보드를 탈때 왼쪽 팔목을 자주 삐게 됩니다) 예전부터 기본적으로 체력을 팔굽혀 펴기로 단련하던 터여서 팔목을 삐고 나면 절대 못하는 것이 팔굽혀 펴기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형외과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물리치료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더군요. 그래서 근처 한의원을 가봤는데 정형외과랑 별로 다른 치료를 행하지는 않더군요. (뜨거운 수건을 손목에 감고 뜨거운 전등 아래에서 손목을 천천히 돌리라고 합니다.) 대신 쑥냄새 가득한 파스를 주는데 그거를 붙이고 나면 시원한 기분이 좋아서 종종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삐었다는 느낌만 가실 뿐이지 근본적으로 치료가 되는 느낌이 아니였습니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팔 굽혀 펴기가 안되더군요.) 그렇게 몇년간은 팔목이 아프지는 않지만 뭔가 찜찜한 상태로 겨울을 맞이하면 신나게 보드를 타고 봄이 되면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하는 행동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다가 여름에 '스케이트 보드'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투른 자세로 타다가 대박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찜찜했던 손목을 완전히 접질러 버리게 되버려서 '이거 손목을 못 쓰게 되는게 아닌가?' 싶어서 자주 가던 한의원에 찾아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날 쉬는 날이더군요. 아픈 손목을 부여잡고 근처 정형외과나 한의원을 찾아서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유심히 안보면 (예를 들어서 팔이 아파서 열심히 한의원을 찾던 사람같은 경우가 아니면) 못 보고 지나칠 만한 크기에 '체질 한의원' 이라는 간판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또 예약제나 시간을 정해놓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이름 말하고 앞에 들어간 사람들이 치료가 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제 차례가 되니 진료실에 들어갔습니다. 

첫째날.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 하길래 손목이 아파서 왔다고 했더니, 훗! 그렇군요 (정말 가소롭다는 얼굴을 하셨습니다!!!) 하시더니 발가락 사이에 '무지 절라 아픈' 침 한방을 꼽았다가 뽑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됐다고 하십니다. 

  "아픈데요?"

일순 당황하시는 게 느껴집니다. 그 뒤로 온갖 마루타가 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이거 저거 시도를 해 보십니다. 나중에는 오른쪽 손에 이따만한 대침을 손 중앙에 꼽더니만 손을 천천히 돌리고 있으라고 하십니다. 

  "여전히 아픈데요?"

음 내장쪽이 안 좋아서 손목쪽에 기운이 잘 안가는 것 같다고 하시며. 다음날 다시 오라 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제 보약 이야기 하시면서 약 팔아먹겠구나.. 라고 짐작하면서 그래도 받던 치료 마저 받자 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날.

일반적인 침맞기 행위를 합니다. 손목이 아픈데 왜 내장쪽 기를 잘 통하게 하는 침을 맞는지 도무지 몰랐지만 그렇다고 하니까 누워서 침을 맞았습니다. (물론 속으로는 절대 그럴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더구나 침을 발에 집중적으로 맞으니 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왜냐하면 무지 아팠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정도 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다음날 다시 오면 이제 손목을 치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세째날.

처음에 왔을 때 맞았던 바로 그 발가락 사이에 침을 한방 꼽았다가 뽑습니다. 아악! 아프다!! 하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진짜 신기하고 거짓말 같이 손목 아픈 것이 그 즉시 사라졌습니다!!! 


너무 신기하고 이상해서 물어봤습니다. 

"침만으로 손목이 삔 것을 낫게 할 수가 있군요?"

"대부분의 병은 침만으로 나을 수가 있습니다. 다만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의사들이 잘 못하기 때문이지요" (아아 저 겸손이라니!!! 당신은 화타십니다!!)

실제로 그 한의원에는 그 흔한 찜질팩이라던지 뜨거운 전등이나 쑥냄새 나는 파스가 보이지를 않더군요. 그리고 몇 년간 제 손목에서 떠나지 않았던 근원적인 아픔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팔굽혀 펴기가 잘 되더군요 ㅜ.ㅜ )

이제 어디선가 한의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여전히 '유사 의료행위'를 방불케 하는 한의사들도 많지만 나는 진정한 화타를 만났노라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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