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람만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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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부터 시작해보자.
미군부대의 포름할데히드 유출이 돌연변이 괴물 탄생의 직접적인 이유다.
직접적으로 '미군'을 비극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 2000년 맥팔랜드 사건을 거의 그대로 보여줬다.
대사도 사건 기록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독극물 방류를 명령받은 한 군무원이 스스로 사진을 찍고
녹색연합에 고발을 한 거다. 그때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한강에서 괴수가 나오는 영화를 찍으려는 구상을 가진 사람에게
그보다 더 좋은 사건이 어디 있을까?
자세한 스토리조차 없었지만, 이게 괴물의 탄생배경이자 기원이라고 점찍었다.


미군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직접적이라서,
'한반도'는 반일영화, '괴물'은 반미영화라는 말이 나온다.

-> 그런 식으로 단순무식하게 코드화되리라고 예상은 했다.(웃음)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가 있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반미는 아니다.
풍자의 결이 여러 겹이고 미국은 가족을 힘겹게 만드는 방해자 중 하나이자 정점일 뿐이다.
오히려 괴수 장르의 전통을 강하게 보여주는 코드로 사용됐다.


그 뒤 영화는 갑자기 폭우 속에서 한강에 뛰어내려 자살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강에 무엇인가 있다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시점에서
직부감으로 보여준 한강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물 같았다.

-> 물이 부글부글 끓는 듯한 느낌, 마치 용솟음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 장면은 모터보트를 빙빙 돌려 물결을 일게 만들어 그 출렁임을 찍은 거다.
화창한 날씨였는데, CG로 먹구름과 으르렁 거리는 하늘을 만들었다.


처음 이 두 시퀀스를 통해 '괴물'의 영화적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살인의 추억'보다 규모는 터졌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훨씬 단순하고 직접적이라는 서언으로 들렸다.

-> '괴물'을 시작할 때 이번 영화는 외양은 온통 울퉁불퉁 하지만
맛은 단순하고 직접적인 빵같은 이미지로 잡았다.
풍자도 직접적으로, 유머도 대놓고 하고, 괴물도 화끈하게 난동부리는 영화.
프롤로그를 통해 영화의 세팅된 분위기를 보여주고 관객의 동의를 구하는 것 같다.
'괴물'은 부검실의 으스스한 분위기, 먹구름 가득한 시커먼 한강에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람을 보여주면서 장중한 스트링 음악을 들려주다가
갑자기 침을 흘리면서 자는 송강호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딱 바뀐다.
멀리서 뽕짝이 들려온다. 그게 영화 전체의 분위기다.
진지하거나 비극적이다가 갑자기 엇박자로 웃음이 나오는 치고 빠지기.
송강호 장면의 뽕짝 음악은 이병우 음악 감독이 직접 작자 작곡했다.
나중에 ost로 들어보면 가사가 정말 웃긴다.
"무자식이 상팔자야~ 한강의 추억~"


급작스런 장르의 전환이 '괴물'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스릴러, 공포, 액션, 드라마를 넘나드는 사이에
꼭 코믹한 장면이 있다. 그런 구성은 원칙이 있었나?

-> 개인적으로 배합을 한다거나 섞는 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책임한 답변 같지만 내게는 그것이 자연스럽다.
나는 인물과 상황에 집중했을 뿐이다.
코믹한 장면조차도 나는 가장 현실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찍는다.
사람들이 오열하는 공동분양소에서 "2487 아반떼 차 빼라"는 대사가 나오면
사람들이 많이 웃는데,그게 한국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지 않나.
계산은 전혀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런 리듬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괴물에게 딸을 빼앗기고 망연자실하던 강두가 병원에서
마치 괴물처럼 생긴 골뱅이를 먹는 장면 등은 의도하고 삽입한 코미디 같았는데?

-> 얼토당토않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건 명백하게
괴수영화의 장르에 대한 자의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리들리 스코트의 '에어리언1'편에 나오는,
괴물 장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체스트 버스터 신
(괴물이 사람 가슴에서 튀어나오는 장면)을 의식하고 만들었다.
그렇게 안봐줘서 문제지.(웃음) 병원에 끌려간 박강두가
'괴물에게 바이러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등을 쓰윽 긁던 강두는
미끌거리고 이상하게 생긴 골뱅이를 손가락으로 먹는다.
그때 노골적으로 카메라가 등으로 트랙 인을 한다.
괴물 장르적으로 보면 등이 쩌적 갈라지면서 주인공이 괴물로 변하는 것도
괴수 장르의 컨벤션에서는 예상가능하다.(웃음)
그러다 핸드폰 진동음이 울리면서 딸에게 전화가 온다.
일반적 괴수영화의 내러티브를 따르는 듯하다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는 거다.


장르를 만족시키면서도 장르를 비틀고 싶은 생각이 강했나보다.

-> 그럴 수도 있다.
다른 괴수 영화와 '괴물'이 다른 점은 가족들의 사투 목적에 있다.
일반적인 괴수영화라면 과학자가 괴수의 약점을 발견하고,
끈질기게 그걸 공략해서 싸워 이긴다.
괴물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괴물'은 유괴사건이다.
가족들이 현서를 구하려는 과정에서 괴물과과 싸우게 될 뿐, 괴물 퇴치가 목적이 아니다.


'괴물'은 괴수영화지만 사회에 대한 풍자극이라고 생각한다.
괴물만큼이나 다른 이야기가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 이 영화에는 괴물 이외에도 할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에 괴물이 초반에 등장해야 했다.
괴물에게 신비감과 호기심이 집중되면 다른 이야기들이 보이지 않는다.
합동분향소나 바이러스, 에이전트 옐로우 등,
괴물이 나타난 이후에 사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에 괴물을 미리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괴물 영화들을 보면,
괴물 초기 목격자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안 믿다가 호되게 당하는 거지.
그런 설정이 답답해서 너무 싫었다.(웃음)
다 같이 본 거니까 믿고 안 믿고 실랑이 할 일이 없도록 대놓고 보여줬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너무 빨리 등장해서인지,
처음에 괴물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런 반응은 예상했던 일인가?

-> 처음 괴물이 나오는 장면은 황당하지 않나? 나도 황당하다.(웃음)
초반 15분에 괴물이 등항하는데,
백주 대낮에 얘가 직사광선을 받으면서 뛰어다니는 장면을 롱 테이크로 찍었다.
잘 보면 등이 햇빛을 받아서 반짝거린다.(웃음)
이렇게 최대의 볼거리 괴물을 공개하는 괴수 영화는 거의 없다.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은 감독 입장에서는 불리한 장면이다.
어둠 속에서 괴물의 일부분만 보여주는 걸로 시작하면 안전하다.
하지만 그러면 나도 끝까지 조마조마하고 관객도 마찬가지다.
괴물을 천천히 보여주면 이렇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영화 시작한 지 30분 지났는데 꼬리 나왔어.
음, 꼬리까지는 아직 괜찮아. CG가 아직까지는 볼만해.(웃음) 이제 몸통은 어떨까?"
이렇게 서로 끝까지 조마조마하게 가는 것이 싫었다.
CG가 훌륭하건 부족하건, 매 맞을 거 미리 맞고 이야기를 끌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괴물이 불쌍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 부모도 없는 독극물 출신으로 출신배경도 후지고,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클라이막스에서는 더 지독한 독극물도 맞는다. 안되긴 했다.(웃음)
하지만, 영화에서 괴물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시킬 여지는 많지 않았다.
관객의 감정이 가족에게 향하길 바랬으니까.
하지만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독극물인 에이전트 옐로우를 맞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
박강두와의 목숨을 건 사투 등의 장면에서 감정이입의 여지를 조금 남겨뒀다.
특히 상대역인 송강호에게 클라이막스에서는 괴물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눈빛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했다.
"내게도 비극이지만, 너도 참 비극적인 삶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송강호를 통해 전달된 것 같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듯한 분위기로 영화가 끝난다.
이런 재난이 또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받았다.

-> 제작사에서도 그런다. 속편을 만들고 싶으면 하시라.(웃음) 그러나 나는 안할 거다.


괴물과의 싸움에서 특이했던 점은,
가족들이 흩어져 바통을 이어가듯 괴물과 맞선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가 있었나?

-> 3남매가 서로 떨어진 모습을 보면서 더 애달픈 감정이 생긴다.
가족이 뭉쳐서 티격거리며 움직일 때와 각자 혼자 있을 때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우리도 그렇지 않나.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좀 어리광도 피우다가 밖에 혼자 있으면 힘든 일도 다 한다.
일반적인 괴수영화의 내러티브는 흩어져있던 인물들이 후반에 모이는데,
'괴물'에서는 함께 있던 사람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간신히 모인다.
독특한 배열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강에서 주인공들이 벗어나면서 시간이 경과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일부러 간극을 준 것인가?

-> 1맏, 2막처럼 중간 클라이막스가 끝난 뒤 새로운 스토리가 시작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전에서 멀어진 듯하다가 다시 한 발 한 발 핵심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주인공들이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다가 그들이 여전히
현서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상황이 한꺼번에 정당화된다.
인물이 흩어지고 각개 전투를 벌이면서도 현서를 찾는 다는 단순하고
강력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장면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 현서가 그 안에 며칠이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길게는 보름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어떤가?

-> 날짜의 경계선을 따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낮과 밤이 바뀌고 그 사이에 사라진 시간이 없다고 보면 총 닷세.
중간에 사라진 시간이 있다고 해도 6~7일 정도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임펙트 있는 대사는 박장두의 " 노 바이러스?"였다.
일차적으론 이라크 전쟁 풍자로 들렀다. 그 말을 넣은 이유는?

-> 대중을 무식하다고 여기는 잘난 사람들이
대중을 왕따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언어를 통한 것이다.
미국인 의사와 한국인 통역관은 무식한 송강호가 영러를 못 알아들을 줄 알았겠지.
아무리 영어를 몰라도 그 정도는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아듣는다.
삭제된 장면인데, 송각호가 "노 바이러스"하면
그들이 독일어로 말을 바꾸는 장면도 있었다.(웃음) 나중에 DVD에 넣으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그 부분이 가장 갑갑하고 원통한 시퀀스다.
현서가 어디 있는지 이제 겨우 알았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온몸이 결박돼서 1센티미터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웃음을 위해 넣은 장면이 아니라 가장 딸에게 달려가고 싶은 순간에
아이러니하게 꼼짝 못하는 아버지가 보여주는 감정의 정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배우 송강호의 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현장에서 보면서도 찌르르 했다.
8~9테이크 갔는데 4번째걸 썼다. 스태프들이 끝나고 모두 박수쳤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다고 꼽는 장면이나 시퀀스는?

-> 합동분향소를 좋아한다. 내가 카오스를 좋아하나 보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가운데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하니까 좋아할 수 밖에.
'살인의 추억'의 논두렁 장면처럼 한국적인 카오스가 있어서 좋아한다.
장면으로는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강두의 쇠파이프 사투장면.
괴물이 안 나오고 파이프만 나오는 신인데 괴물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그 상황과 감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다음 작품 계획은?

-> '도쿄 옴니버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아직 다른 감독들 라인업이 확정이 안돼서 기다리는 중이다.
작년부터 내가 생각한 오리지널 스토리를 작가가 쓰고 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담한 사이즈와 예산의 드라마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설국 열차'라는 프랑스 만화 판권을 샀다. 칸 갔을 때 원작자도 만났다.
SF성격도 있고 규모도 있는 작품이라 '괴물'과 연이어 할 순 없을 것 같다.


지난달 변희봉 선생을 인터뷰했는데, 디테일이 좋은 봉준호 감독이 사극을 찍으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음번에 사극은 어떤가?

-> 내가 사극을 하면 또 이상하게 망가뜨려놓겠지?
현대의 말투로 찍을 것 같다.
좌의정이 우의정에게 "야, 너 진짜 이럴래? 주상전하 표정 못 봤냐? 궁녀들이 다 웃더라."
이런 식으로.(웃음) 그렇게 장르를 모독하게 될 것 같은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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