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지음, 임지원 옮김

영장류 새끼들은 (인간을 포함한) 세 가지 대상에 대한 공포를 타고 나는 것으로 보인다. '추락, 뱀, 어둠'이 그 세 가지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는 나무 위에 사는 동물에게 부과되는 뉴턴적 중력의 위험을, 뱀에 대한 공포는 조상 대대로 포유류의 적수였던 파충류에 대한 공포를, 어둠에 대한 공포는 밤에 사냥하는 포유류 맹수에 대한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본문중에서 


   
'한 분야의 명인이라는 것은 꼭 한 분야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지식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다' 라는 말 처럼 칼 세이건은 천문학자 이지만 진화학에도 조예가 깊고 자신은 매우 무지하다고 했지만 뇌과학에도 상당히 심도 있는 글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영화화가 진행된 소설인 '컨택트'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과학관련 교양서적에서 항상 추천되는 '코스모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 칼 세이건이 집필한 진화, 뇌, 꿈 등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는 책 입니다. 

항상 용(Dragon)이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궁금해 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공룡 대백과' 사전 등을 열심히 보고 자라면서 더욱 더 궁금해 했습니다. (단지 신화일뿐일까?) 그렇지만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들 중에서 용(Dragon)이라고 불릴 만한 생물은 역시 '공룡' 밖에 없겠지요. '우연히 발견된 화석을 보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라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용의 정체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곤 했었는데 제 상상의 깊이는 고작 만년정도 수준이였던 것입니다. 현생 인류가 지적인 발달이 다 끝나가는 상태에서 용의 존재를 상상하는게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였지만 칼 세이건은 우리의 존재가 영장류에서 진화되기 전에 존재했던 포유류 시절에 '실제로 보고 느꼈던' 공룡들에 대한 유전적 기록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내세웁니다. 재밌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성서적 신화에서 존재하는 '에덴'의 존재 또한 인간의 뇌가 폭발적으로 진화한 시점에서 일어난 메타포적인 내용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집니다. 인간이 지능이 많이 부족했던 영장류에 가깝던 시절에서 지금의 모습과 가깝게 진화하며 떠나온 시절이 뱀과 공존하던 메타포적인 '에덴'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무려 30년 전의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할 만큼 훌륭한 교양서적입니다. 이러한 서적들을 자주 보고 자주 생각해야 과학적인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텐데요. 기술서적에 지친 이공계 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막스 베버가 말하길

"청교도의 금욕주의 적인 삶의 자세가 자본주의 형성에 기여를 했다"

즉 청교도의 직업은 신이 준 것이라는 소명의식으로 인해 진지하게 일을 하고 ,이승에서의 행복을 바라지 않고, 금욕하는 태도로 인해서 강제된 저축이 자본의 축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흔히 말하듯 '판'을 치던 세상은 저 멀리 중세시대가 아닌 바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였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고 곳곳에서 행복을 말하는 세상은 불과 100년 정도 전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시스템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절대적인 진리' 라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즘 세상에 만연한 '행복 추구' 또한 역사적인 관점으로 보면 성립된 것이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립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은 앞으로도 변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고, 그래서 당장은 힘들지 모르지만 몇 세기가 지나면 변할 것이 확실하다는 것 따라서 지금의 행복추구 또한 너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 이 아티클의 취지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티클에서 말하는 행복의 기원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8세기 이전에는 '행복 추구' 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기독교적 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독교적 가치관이 어째서 행복 추구를 막았는지는 위에도 설명하고 있지만 토론 시간에 나온 내용이 조금 더 정확할 수가 있을 것 같아서 인용해 봅니다.
 
기독교의 원죄율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행복하면 안된다. "천국에서만 행복할 수 있게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세상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18세기에 계몽주의의 가치와 함께 행복에 대한 관점도 극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주된 이유가 여러개가 있겠지만 몇가지를 꼽아보자면
 
- 전통적인 기독교 테마의 약화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신을 기쁘게 하는 것' 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대두되며 사회적 인정을 얻어 갔습니다.

 - 편리한 생활들의 발명

    이러한 몇몇 예들은 18세기 말 행복을 정치적으로 추구할 정도까지 충분히 강렬했습니다. (미 독립 선언문이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복에 대한 관점으로 인해서 삶에 끼친 영향들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행복해지지 않을 수 없으며 게으름은 결과뿐 아니라 만족을 방해하는 나쁜 습관' 등등의 직장생활에서의 근면함을 강조하며 가정에서의 어떠한 의무적인 행복감등이 대두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해야 한다고들 말하는 데 나는 실제로 결혼생활에서 불행하다. 이혼 ㄱㄱ'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서 19세기에 미국에서 이혼율이 급증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유년시절의 행복을 강조하고, 그러한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Happy BirthDay' 라는 개념도 생기고 이러한 개념은 전 지구적으로 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의 문제점도 엄연히 존재하는 데요, 대표적인 것들이 '행복 문화의 한계'라는 점입니다. 몇가지를 들어보자면

 -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현실과의 괴리감 이라는 측면 입니다.
   미국의 이혼율 급등에 관한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너무 행복을 강조하다 보니 죽음이나 괴로운 것이 인생의 당연한 일인데도 그러한 것을 예전보다 더 못견디는 경향이 생깁니다. (내성이 떨어져서 자살율 증가 같은 현상도 발생합니다)

 - 실제로는 상황이 안좋은 것인데 개인적인 요인으로 돌리는 경향이 사회적으로 만연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실제로 근무환경이 열악한 것인데, '너는 왜 만족을 못하니, 행복해하며 일하지 않는 것은 니 잘못이다!! '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요즘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 일시적인 문제나, 그냥 감정 표현일 뿐인데, 전부 개인의 잘못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만약 직장에서 눈물을 보였다면 '너는 왜 행복해 하지 않냐? 정신과 의사좀 만나봐야 겠구나!' 등등

'행복 추구' 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그리 길지 않았고, 또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조금 더 긴 시간을 두고 바라봐야 한다고 아티클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각을 너무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사려깊게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밝게 웃고 있다면 보기는 좋겠지요..)

== 이슈 토론 ==

1.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 ,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ex: 상사한테 돌 맞았을 때 ,  평소에 자신이 하는 스트레스 관리법이 있는지?)   
  • 평소에 노력이 필요하다. 
  • 해결할 수 있는 난제와 스트레스라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 스트레스라는 것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발생한다
  • 직장상사의 불인정이 하급자에게는 가장 큰 스트레스다.
  • 스트레스라는 것은 위계를 타고 내려온다 (위에서 아래로) 따라서 회사에서 리더들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

2. 성공이 행복보다 중요하는 것인가?( 성공의 정의란?,  승진하면 행복한가? )
  • 막상 대리때가 행복했던 것 같다. 승진하게 되면 대리시절에 당연히 누렸던 행복감을 상실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팀 관리의 어려움 등등)
  • 승진하면 승진했을 때의 행복함이 있다. 지위가 낮았을 때 해결하기 힘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쁨 같은 것?
  • 승진이 누락되면 무지 불행했던 것 같다. 특히 남들은 다 됐는데 자신만 안됐다고 생각하면 더욱 더! 
  • 승진과 행복이 등가교환이였던 시절이 있지만, 그러한 시대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 그렇지만 , 아직도 등가교환이 존재하는 것 같다.

3. 행복한 직원이 좋은 결과를 만든다고 하는데, 행복한 직장을 만들 수 있는 방안이 있는 것인지?
  • 주변 환경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일은 열심히 한다.
  •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효율이 있다. 아티클 본문에 따르면 행복에 관한 이야기중 스트레스는 항상 존재하고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는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 결국 긍정적인(Positive) 태도에 관한 것인가?
  • 긍정적이 되야 한다고 자신을 괴롭힌다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 부정적인 태도와 구별되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져야 한다. 너무 긍정적인 사람들은 곤란하다. 스탁데일 패러독스 "올해 크리스마스는 오지 않아" , "이제 반밖에 안 남았네? 뛰어가자" <-- 이런 케이스가 생긴다.
  •  번외적인 이야기로  타입이 다른 사람들을 팀으로 구성해서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각각의 개인들이 변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
  • 부정적인 사람은 인사정책에서 배제된다. 부정적인 사람은 바이러스다.
  •  합리적인 의심과 부정적인 태도를 객관화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도전적인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리더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4.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 어떠한 것들이 있을 것인가? ( 행복이 인생의 목적인 것인지? ,  행복 진단법 ? )
  •  내 직업, 주변 사람들,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삶에 대한 태도들이라고 볼 수 있다.

5. 행복의 한계에 관한 이야기 , 자신은 행복해서 , 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케이스
  • 자동차 관련 H사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 삼한사온 (밀당질?) 3일은 빡세게 4일은 편하게
  • 국내의 H 홈쇼핑 에서 벌어지는 일: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넣고 풀어주는 케이스. (교언영색)
  • 부하직원에게 항상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6. 내가 행복한지에 관한 진단법
  •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7. 행복( 자유, 평등) 과 자본주의가 결합되서 시스템에 소속된 이들이 결핍감을 느끼게 해서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하게 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을 한다.
  •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라는 책을 추천






최근에 진관희, 흑사회, 삼합회 말이 많습니다. 삼합회는 모고, 흑사회는
또 뭔가..

흑사회는 이름이 조직처럼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조직의 이름으로
착각하지만 실은 고유명사 같은 것입니다. '조폭' , '마피아' , 이런 식의
'범죄 조직을 지칭하는 단어' 입니다. '야쿠자' 라고 하면 감이 탁
오시지요? '흑사회' 라고 하면 그런 느낌입니다.

반면 삼합회는 '흑사회'의 조직명 중에 하나 입니다. 우리 나라식으로 하면
'양은이파'나 '동대문사단' 정도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삼합회는 그러나 전통이 있는 집단입니다.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의 '반청복명'을 부르 짖었던 비밀 결사
'홍문'(洪門)에서 시작됐습니다. 홍문이 청나라의 지속적인 탄압을 받아서
와해 직전에 중국 각지에서 그 뒤를 이은 지방조직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
조직중에 하나가 '천지회'(天地會) 입니다. - 김용 소설에서 등장하곤
합니다. 그 유명한 '진근남'이 이끌고 있는 조직으로 나옵니다.

천지회도 전국조직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탄압을 받으니 조금씩 다른
이름을 취합니다. 그 중의 한개가 '삼합회'(三合會) 입니다. 천지회의 다른
이름답게 천.지.인 세개의 조화를 뜻한다는 뜻입니다. 또는 '홍문'에서
'홍' 글자의 좌 삼수변 세개를 떼내서 합친다는 뜻의 삼합회라고도
한답니다. 이들의 영문명인 'triad'는 영국정부가 이들이 삼각형 문양을
쓰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보통 중국역사에서 이런 비밀결사들이 구체제를 전복시키면, 신체제의
요직을 차지하였으나, 이들은 청나라 전복에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법자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어 일반적인 서민으로 갈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서민을 위해서 청나라를 물리치고자 했던 비밀결사는 자신들의
방대해진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그렇게 서민들을 갈취하는 범죄조직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이것이 중국 최고, 최악의 흑사회(범죄조직) 삼합회
입니다.

타락하는 영웅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쓸 용도가 없는 힘은
부패하기 마련인걸까요? '난세가 아니면 엉웅은 대량살인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라는 씁쓸한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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