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원 글은 루리웹에서 봤습니다. 일본 사람으로 보이는 분이 쓴 글인데, 담담한 필치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사연에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원글은 여기 클릭

 

 '여름 방학 때 아빠가 도쿄에 뮤 배포회 데려가주신대!' '좋겠다! 그런데 포켓몬청, 언제 오려나'
종이 울리자마자 떠들석해지는 교실에서 눈을 빛내는 친구들. 초등학교의 화제 중심에는 항상 포켓몬이 있었다.
그럴때는 나 혼자 맨날 바닥을 보고 있었다. 우리집은 게임보이도, 슈패미도 없었으니까.

'패미컴은 눈이 나빠지니까'.
나와 남동생이 조를 때마다 어머니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셨지만 결코 굽히진 않으셨다.
도감, 세계명작전집, 개미 관찰 세트.
산타는 매년 내 요청을 무시하고 고급 백화점의 포장에 쌓인 훌륭한 선물을 주었다.
기쁘지 않지만 기쁜 척 하는게 힘들었다.

은행원인 아버지가 매일밤 늦게까지 일하는 와중에 전문대를 졸업하고 전업주부가 된 어머니는 분투하고 계셨다.
세탁물은 항상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가 믿는 이상적인 육아란 구몬과 수영과 피아노의 로테이션이며 게임보이 같은 퇴폐적인 오락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어른에게 있어 이상적인 자식은, 아이들 세상에서는 이물질이나 다름없다.
포켓몬에 대한 화제에 따라가지 못하는 나를 기다리던건 소외감이었다.
수영 기록이 빨라져도 초등학생이 소인수분해를 풀어도, 아무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다들, 방과후에는 통신 케이블을 들고 다나카집에 모여 통신대전에 열중했었다.

드퀘도 FF도 크로노트리거도 TV로 친구들의 플레이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포켓몬은 달랐다.
게임보이 화면은 너무 작아서 가까이 보려고 다가가면  '가깝잖아, 안보여' 라며 매정하게 거절당했다.
통신대전으로 불타오르는 친구들 옆에서 혼자 책장에 꽂힌 오래된 만화잡지를 봤다.
눈물을 참기위해 필사적이었다.

용돈을 모아서 포켓몬 공략본을 샀다.
구석부터 구석까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
기술머신의 번호와 기술명을 전부 외웠다.
모든 포켓몬의 진화 패턴도 암기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피카츄도 뮤츠도 었었다.
오히려 허무해질 뿐이라는 걸 깨닫는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건전한 것들에 둘러싸여 유혹에 지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란다는 어머니의 마음은 세상에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라는 걸.
내가 사립대라고는 해도 와세다를 나와서, 나름대로 이름 있는 기업에 들어가 일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사랑 덕분이다.
하지만, 유소년기에 충족되지 못한 마음은, 갈증은, 지금도 여전히 확실하게 남아있다.

'우와, 바이올렛이다! 만세! 아빠, 고마워요!'
아침에 거실에서 아마존 포장 박스를 뜯어보며 난리치는 아들.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아직 SAPIX(중학교 입시) 숙제도 다 안했잖아' 라며 찌푸린 표정을 짓는 아내.
이건 아들을 위해서만이 아닌,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의식이라 말해도 이해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a1의 켄타군은 집에 스위치가 없대. 엄마가 엄하시다고. 불쌍하더라'
아들의 지나가는 한마디에 심장 고동이 거칠어 진다.
아이들 세계에서 공통 언어를 가지지 못하고 어머니의 감시속에서 편차치를 올리기 위해 일일 문제집을 묵묵히 푸는 초등학교 남학생.
얼굴도 모르는 켄타군의 일상을 떠올리자 가슴이 조여들었다.

심야에 가족이 모두 잠든 아파트 저층의 거실에서 혼자 스위치에 전원을 넣는다.
나오하가 마스카냐까지 진화해도, 챔피온 로드에서 테사를 쓰러트려도
놀라움이나 기쁨을 공유할 친구는 어디에도 없다.
맥주를 한모금 마신다.
내가 진짜로 바랐던 건, 이제 두 번 다시 손에 넣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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