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추장민
   이병헌(광해/하선), 류승룡(허균), 장관(조내관), 김인권(도부장)

남자들이 더 많이 공감하는 영화였다는 평이 많습니다. 몇몇 여자분들은 '기대를 너무 많이 하고 봤나..' 라는 평이 강합니다. 사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즘 압도적인 1위 입니다. 

스토리는 일견 평이합니다. '왕자와 거지' 컨셉입니다. 이제는 식상할 만한 내용이지만 출연진 들의 연기만으로 모든 것을 압도합니다. 

특히나 일인 이역을 연기한 이병헌의 연기는 정말 압권입니다. 순박한 하선을 연기할 때의 눈빛과 만인지상의 정점에 서 있는 광해를 연기할 때의 눈빛과 왕으로서 자각을 한 하선을 연기할 때의 눈빛이 서로 다르게 느껴졌던 건 저 하나 뿐이였을까요? 

백성을 사랑하는 그 순수한 모습,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정치'를 무시한 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다 신하들에게 '탄핵'을 당하는 모습, 위정자들에게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라고 외치는 모습, 누군가를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무협 소설에서 나올듯한 남자들 끼리의 우정 , 충성심 등이 적절하게 잘 조합하여 후반부에서는 감동을 주더군요. (안구에 습기가.. ㅜ.ㅜ 여자는 몰라 여자는 몰라!!) 

동이가 나오더군요. 비중 극소량 , 여자 배우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집어 넣었나.

그리고 뭐 후반에 나오는 거의 유일한 액션씬 말인데요.. 그거 펜타 킬.. 맞지요?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있더군요.

이런 영화를 대선을 앞두고 내놓는 시기도 적절했다고 봅니다. 천만은 무난히 찍을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생각나서 찾아본 그 분의 '부끄러운지 알아야지!' 영상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트리부니키아 포테스타스'
 (Imperator Caesar Augustus Tribunicia Potestas)

조금 길지만 이 말은 제정 로마의 '황제'를 칭하는 말 입니다. 로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 이라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의 기초를 만들고 그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가 실질적으로 제정의 역사를
이루었지요.

이영도 작품의 '눈물을 마시는 새' 에서 말하길 "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독약을 마시는 새,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 중에서 가장 일찍 죽는 것이 '눈물을 마시는 새' 며, 가장 오래 사는 것이 '피를 마시는
새'라 합니다. 너무나 해로워서 몸밖으로 내보낼려고 하는 눈물을 마시기 때문에 가장 일찍 죽으며 너무나
중요해서 몸 안에만 가지고 있으려 하는 피를 마시기 때문에 오래산다고 하지요. 그래서 '눈물을 마시는 새'는
'왕'을 뜻하며, '피를 마시는 새'는 '제국'을 뜻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을 떠 안는 관용으로 일관한 카이사르는 왕이 없던 공화정 로마시대에 제정의 기초를 마련한
'왕'이 였고, 반대파를 가차없이 숙청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제국'의 초석을 닦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다른 사람을 관용하고 포용할 줄 알았고 유머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해지던 카이사르가 멋진
'왕'으로 느껴집니다. 예전의 기억이지만 다시금 되 새겨 보기에도 카이사르는 정말 뛰어난 인물이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영도




"네 마리의 형제 새가 있소. 네 형제의 식성은 모두 달랐소. 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독약을 마시는 새,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가 있었소. 그 중 가장 오래 사는 것은 피를 마시는 새요. 가장 빨리 죽는 새는 뭐겠소?"

"독약을 마시는 새!!"

 고함을 지른 티나한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 보자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요"

언제나 무덤에서 돌아왔다고 첫글에 대한 코멘트를 다는 이영도 님의 '눈물을 마시는 새'입니다. 저번에 '폴라리스 렙소디'에 이어서 계속해서 이영도님의 글을 보고 있습니다.

평가절하 되기 쉬운 판타지를 문학의 위치까지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 이영도님, 글 자체의 마력이 대단합니다.
 톨킨류의 판타지만 존재하는가? 라는 여론에 답을 하듯이 한국형 판타지를 구상하고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나 '퓨쳐워커' 이후로 내려오는 중심인물이 누구일까 계속해서 유추하게 만드는 스타일의 진행방식이 더욱더 몰입도를 가져오고 그 것이 가져오는 반전을 즐기게 만들게 합니다.

너무 중요해서 몸안에만 가지고 있으려고만 하지 밖에 내보내지 않으려 하는 '피'를 마시는 새는 당연히 오래 살 수밖에 없고, 얼마나 해로우면 몸밖으로 내보낼려고 노력하는 '눈물'을 마시는 새는 일찍 죽을 수밖에 없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눈물'을 마시는 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물을 마셔서 , 일찍 죽는 새가 바로 왕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왕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왕이라고 떠받드는 존재들이 있어야 왕으로서 군림할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떠받들게 하는가? 바로 그들의 눈물을 마셔주기 때문에 떠 받들여 질수가 있습니다.

판타지 문학에서나 가능한 일일까요? 현실의 정치적인 모습이 더욱더 타락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문학에서나 이상적인 왕을 찾아보게 되는 무력함을 느끼지만 , 그렇기에 더욱더 현실에서 '눈물'을 마셔주는 왕을 기대하는 환상을 꾸게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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