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것인지, 자다가 깨는 것인지 , 새벽에 일어 났습니다. 세상에 쉬운게 하나도 없는 것인지 일이 쉽게 진행은 되지 않는군요, 살아가는게 이리 힘겨울 정도로 노력을 많이 필요하리라곤 전에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조급하게 마음을 먹지 말자 라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아직은 충분히 주변을 돌아보면서 살아갈 만큼 여유롭지 않나 봅니다.

새벽에 일어나 예전 블로거들의 블로그에서의 멋진 글귀들이 떠올라 스스로 위안을 해봅니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이름하여 곤(鯤) 이라 하였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 이라 하였다. 붕의 등도 그 길이가 몇 천 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붕이 한번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았다. 이 새는 바다에 태풍이 불면 남쪽 바다로 이동하게 된다. 남쪽 바다란 천지를 말한다.

붕이 남쪽 바다로 옮아갈 때에는 물을 쳐 올리되, 그 높이가 3천리나 되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리나 올라가 유월의 거센 바람을 안고 날아간다. 아지랑이나 먼지 같은 것은 생명체가 숨을 쉬면서 서로 불어내 보낸 것이다. 하늘이 파란 것은 그 본래의 색깔이 그러한 것일까? 그 멂이란 다함이 없는 것일까? 그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역시 그러할 것이리라.

무릇 물이 깊지 않다면, 큰배를 띄울 수 없을 것이다. 한 잔의 물을 작은 웅덩이에 부어 놓으면 땅에 닿아 버리는 것은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쌓이되 두텁지 않다면, 그 역시 큰 날개를 떠받칠 힘이 없게 된다. 따라서 9 만리 정도는 올라가야 바람이 날개 밑에 그만큼 쌓이게 되어, 그런 뒤에 지고 거리낄 것이 없는 뒤에야 붕은 남쪽으로 날아가게 된다.

가까운 교외로 나가는 사람은 세 끼 밥을 먹고 돌아와도 배가 여전히 부를 것이나, 백리 길을 가는 사람은 전날 밤에 양식을 절구에 찧어 준비해야 하고, 천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동안 양식을 모아 준비해야 한다.
-莊子 소요유(逍遙遊)

위 글은 이누잇 님의 블로그에 있던 글입니다. 그 분은 멀리 날기위한 준비를 오래 하셨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의 준비 끝에 '이제야 날아볼까' 하시면서 그 날아가기 전에 대한 다짐으로 소요유편을 응용해서 글을 남기시는 센스는 알아 줄만하지요. 지금의 힘든 것이 멀리 날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생각해서 스스로를 위안 삼고자 합니다.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야 말로 완전한 패배자야. 게이에다 아무도 안읽는 책을 20년 동안 썼지. 그래도 나중에 그는 ‘고통 속에서 보낸 나날이 그대를 만들었으니 그 때가 가장 행복했노라’고 말했어. 고등학교야 말로 고통의 최고봉인데 가장 행복한 시절을 건너뛰면 어떻게 하니. 고통이 없으면 고통을 추억할 수 있는 즐거움도 사라지고 말아.”

- 미스 리틀 선샤인 -

수잔나님의 영화평 중에서 맘에 드는 귀절이라 쓱싹 한 부분입니다. 지금은 뭐 그렇게 힘들지는 않지만 제 입장에서는 썩 즐거운 편도 아니라서, 미래의 나는 지금을 약간은 그리워 할지도 모르겠군요 ㅎㅎ

어제부터 슬픈 음악이 왜 이리 땡기는지 하루종일 이동하면서도 그 음율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돕니다.


Posted by Crazia = 광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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