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유명한 '가이우스 쥴리어스 카이사르'의 말이다. 보통 맨 뒤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는 표현으로만 많이 쓰인다. 로마 공화국이 내전에 휩싸이게 된 루비콘 강 앞에서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으로 유명하다. 


  보통 일반적인 천재 지도자라는 덕목만으로 카이사르를 평가할 수가 없기에 이탈리아의 일반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표현을 빌어보자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지적능력 ,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자기 제어 능력, 지속하는 의지,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천재 인정에 인색한 이탈리아가 인정한 천재 되겠다. 대머리 인게 아쉬운 정도고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천재다. 40 넘어서 뭔가 해볼려고 할 때 흔히 드는 변명이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도 40넘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라는 말로 속이려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들의 측면에서 카이사르의 대단한 점은 '하렘 마스터' 라는 것이다. 수많은 애인들끼리 서로 모르게 관리하고 설사 걸렸다 하더라도 별 일 없이 넘어가게 만들 수 있었다. 


  라틴어로 이름을 표기하면 'CAIVS IVLIVS CAESAR' 이 되는데 초기 라틴어에는 G 가 없어서 C 를 쓴것이라 한다. 발음은 가이우스 이다. 사진에 나오는 동상 아래쪽을 보면 C-IVLIO CAESARI 라고 적혀 있는데 이건 왜 발음이 다른지는 모르겠다. 위키피디아식은 위에 나오는 형식이다. 


  카이사르 화장터에서는 처칠이 했던 "시저에 의한 침공으로 영국은 역사의 시작이 독일보다 500 년 빠르게 되었고, 독일은 짧은 역사로 인하여 아직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여 1 차, 2 차대전을 일으키는 야만적인 일을 하고 있다" 라고 독일 디스성 발언을 했던 탓인지, 영국의 국부로 여겨(?)져서 인지 영국에서 여행온 학생들이 많은 꽃을 바치고 있다. 


가이드에게 추천받은 맛집 소개. 판테온 근처에 다 있다. 첫번째가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켜먹었다던 젤라또집. 추천은 리조맛 메론맛


두번째는 너무나 유명한 커피집. 스타벅스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가 이탈리아 여행을 와서 마셔보고 감동받았다던 라떼를 (그런데 왜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한잔, 물론 슐츠가 마신 곳은 나도 모른다. 다만 아무데서나 마셔도 맛있었을 것이다. 


  커피 싫어하는 나도 가끔 마실만큼 이탈리아 커피는 부드럽다. 예전에 비슷한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허세는...' 했었지만 이자리를 빌어 사죄한다. 


세번째는 맛집인데 치즈 피자, 해산물 파스타, 봉골레, 그리고 최근 밥이 유행하는 로마의 밥이 들어간 참치 해산물 샐러드다. 다만 밥은 찬밥이고, 게다가 물에 불었는데도 엄청 딱딱하다. 하지만 먹을만 하긴 하다. 


이탈리아에서 먹는 이탈리아 요리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밥이 들어간 샐러드다. 우리에겐 주식이 저들에게는 샐러드 인것이다. 


신들의 도시이며, 영원의 도시 로마는 낮과 밤의 모습 또한 다르다. 어둠의 계열을 좋아하는 나는 밤의 로마쪽도 좋다. 

  산탄젤로 성 (Castel Sant'Angelo) 이다. 한자로 하면 (성천사:聖天使) 가 되겠다. 원래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가족 묘지로 쓰려던 거였는데 나중에 교황이 이 영묘단지를 고쳐서 성곽으로 만들고 중세동안 피난처, 요새, 교도소 등으로 써였다고 한다. 산탄젤로 라는 이름은 590년 그레고리오 교황이 흑사병이 물러나길 기도하다가 흑사병의 종말을 뜻하는 광경인 대천사 미카엘이 이 성 상공에서 칼을 칼집에 넣는 환시를 보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다.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위에 해신 넵투누스 (포세이돈)가 서 있는 모습이다. 무지하게 상업적인 전설이 있는데 첫번째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번째 동전을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커플로 왔으면 사람 머릿수만큼 던져라 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커플로 와서 두번씩 던지는 경우도 있으니 엄청 상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긴 나도 던졌으니. -ㅅ- 


  베네치아 광장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념관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풀네임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마리아 알베르토 페르디난도 에우제니오 톰마소(Vittorio Emanuele Maria Alberto Eugenio Ferdinando Tommaso) 이다. 왕족답게 무지하게 긴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보통 줄여서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영어식) 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 통일의 기초를 닦은 왕이다. 전투력이 그다지 뛰어난 왕은 아니였지만 속된 말로 얍삽하게 뒤치기를 잘해서 집권 중기에 오스트리아 세력을 몰아내고 베네치아를 되 찾았고, 집권 말기에 프랑스가 로마를 비운 사이에 로마를 되찾아서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그래서 로마에 베네치아 광장이 있고 그곳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념관이 있는 것이다. 사망후에는 판테온에 안장되었다. 판테온에 가보면 묘가 있는데 그 위에 쓰여져 있는 글은 'VITTORIO·EMANVELE·II / PADRE·DELLA·PATRIA' 다. (비토리오-에마누엘레 2세 / 국가의 아버지) 


  또 로마하면 유명한 곳인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젤라또를 먹던 일명 '공주님의 계단' 되시겠다. 스페인 대사관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 광장이라고 불린다. 


  사진에 보이는 경계 저편은 바티칸 시국(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 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크기는 작지만 교황이 살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 어마 하다. 밤에 보면 저렇게 아스라이 멋지게 보인다. 


  치약계의 샤넬이라는 마르비스다. 좋은 향이 오래 남아서 밤에 양치를 해도 아침까지 향이 남는다. 단 구강악취가 심한 사람은 예외 일듯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다. 20대 초반(24살)에 이정도라니.. 라는 생각도 들지만 스스로도 이거 이상 가는 피에타를 만들지 못했다는 카더라 통신도 존재한다.

  

  자기가 젊을 때 만들다가 돈 안들어와서 접었는데 (훌륭한 프리랜서의 자세다) 후에 버려진 작품을 누가 줏어다가 베드로 성당에 가져다 두고 사람들의 찬탄이 자자해서 자기도 가봤는데 마침(?) 자기 작품이였다. 그래서 스스로 공명심에 몰래 밤에 성당에 숨어들어와 성모띠에다가 자기가 했다고 서명을 남겼다고 한다. 물론 그 후에 돌아가는 밤길에 빛나는 별을 보고 신앙심 + 자격지심에 다시는 자기 작품에 서명을 남기지는 않았다고 하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여러가지 판본이 있지만 대략 다 비슷하다. 

  

  이런 괴수급 천재가 그 당시로는 놀랍게 오래 살았는데 (91세) 죽기전에 한 유언이 '이제야 조각을 좀 알 것 같은데.. 죽어야 하다니' 였다니 , 70년이 넘게 돌을 만지작 거려서 '알 것' 같다니 천재의 겸손이 놀라울 따름이다.


  70년대쯤에 자칭 예수라는 사람에 의해서 파손되었다 복구되서 방탄유리에 둘러 쌓인채 저 멀리에 있어서 안타까웠다. 미칠려면 곱게 미칠것이지 문화재에 대고 왠 삽질인가. 


이번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은 살아 있는 관광지라는 평이 자자하다. 교황때문에 바티칸 관광객이 3배로 늘었다는 소리가 있다. (즉 바티칸은 신성한 곳이라지만 관광객들로 인한 지옥이 되버렸다) 입장전 3시간에 길바닥에 서서 줄을 서야 하니 입장하고 나면 지쳐서 쓰러지고 싶을 정도다. 


베네치아에 왔다. 사진은 베네치아 지도이다. 정말 저렇게 생겼다.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다. 건축학적으로 여러 설명이 있지만 원래는 목조 다리였다가 지금처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베네치아가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하던 시기에 갤리선이 지나갈 수 있게 아치형으로 높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거 치고는 너무 낮은데? -ㅅ-) 리알토 다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대운하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에 많은 회화작품에서 등장한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사람이 무지하게 많아서 경치는 잘 안보인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이다. 성당 외곽의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다는데 보지는 못했다. 17세기 당시에 페스트 병을 극복한 기념으로 성모 마리아에게 바친 성당이다.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다. 두칼레 궁전과 프리지오니 감옥을 잇는 다리이다. 범죄자 들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 두칼레 궁전의 정문으로 나오지만 유죄를 받으면 이 다리를 건너 감옥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 다리를 건너며 마지막으로 보는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죄수들이 탄식하는 모습에서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산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이다. 한쪽 면이 바다를 향해 열려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비둘기들이 어마 어마하게 많다. (그 만큼 살모넬라 균이 퍼지고 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갈매기가 배고파서 이 넘치는 비둘기를 잡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나는 안타깝게(?) 구경은 못했다. 나폴레옹이 이 광장을 보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 이라고 찬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나는 그닥..) 물론 그래놓고 나폴레옹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킨건 (아름답기 때문에 파멸해야 하는건가) 뭐. 



  베네치아의 야경이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을 만큼 경치가 좋다. 



   에드워드 기번 지음
   가나모리 시게나리 편역 및 감수
   한은미 옮김

모든것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바라본 로마는 '밝음'이였다면, 에드워드 기번 이 바라본 로마는 '어둠' 이였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가 강력하게 된 이유에 촛점을 맞춘 이유가 바로 그 유명한 역사 고전인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명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었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오현제 시대로부터 로마제국이 역사에서 사라질 때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역사를 서술하지만 그 아름다운 문장으로도 유명합니다. 원전을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그 방대한 양에 질려서 일단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편역 작품을 하나 고른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하지만 '완역판을 보기 전에는 편역은 손을 대면 안된다' 라는 생각을 굳히게 해 줬습니다. 읽다 보니 원전이 너무 너무 궁금해  지더군요. (헙 설마 이걸 노린 것인가?) 

심지어 에드워드 기번이 다루지 않았던 부분(초기 도시국가 부터 공화정을 거쳐 제정 성립 까지)에 대한 개요부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시오노 나나미가 저술한 부분가 차이가 심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역시 다양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가지게 해 준 작품이였습니다. 





저자 : 낸시 헤더웨이
역자 : 신현승

나름  세계 신화에 대해서 노력한 흔적이 대폭 보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문헌 자료로 남아 있는 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대부분인 관계로 거의 70-80 % 의 신화 자료는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대한 것입니다. 

다루고자 하는 분야가 많으면 필히 나타나는 책에 대한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글이 딱히 쉽게 읽혀지지도 않습니다. 이건 굳이 번역자가 잘못했다기 보다는 원 저자의 글솜씨가 그리 뛰어나 보이지는 않습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
재미가 없다" 정도로 요약 할 수가 있습니다.

신화라는 것은 고대를 살아간 우리 인류의 조상들에 대한 역사를 전승하기 쉽게 이야기화 시켰다고 보는 것이 맞다면, 우리 고대 인류는 야만과 약탈의 문화 였을 것입니다. (당연한 걸까요? )

그렇기 때문에 애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닌것 같습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거의 모든 신들이 즐겨 하는 짓이 강간, 근친결합 , 근친살해 로 점철되어 있으니까요.




 


저자: 시오노 나나미
역자: 김석희

"몰락해 가는 것은 슬프다. 그것이 아주 거대하고 높았던 것일수록 더욱 더.. "

몰락해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항상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해피엔딩이 참 좋은데.." 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강했기에 로마가 강력한 제국을 구축하는 데까지만 읽고 로마가 망해가는 이야기는 멀리 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하는 차원에서는 어떻게 강해졌는지도 중요하지만 '무엇 때문에 몰락하였는가?' 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제야 마지막 권을 손에 들 수가 있었습니다.

저자 또한 로마 제국의 멸망에 관한 책들이 많았지만, 어떻게 로마가 그렇게 강력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는 가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기에 '로마인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책이 였기에 저자 역시 로마 제국의 멸망기를 빠르게 써 내려갈 수가 없었던 것이겠지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책을 읽고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1. 로마를 가장 강력하게 만들었던 시민 계층의 몰락
  - 귀족과 노예만으로 사회를 강력하게 할 수 없었다는 결론을 다시금 내리게 되지요. 

2. 제국 말기의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 유일신 교리로 무장하여 중세 암흑기를 열게 되는 시발점이 됩니다.



이 두가지가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저는 봅니다. 요즘 우리나라와 연관되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암울 하지요. 중산층 (시민층)의 '먹고사는 문제'를 어떻게 잘 해결해서 그 계층을 단단하게 만들어 상위 계층으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역시 중산층의 경제 안정성 보장과 '교육' 문제가 사회 기반으로서 자리 잡혀야 합니다.

이래서 몰락된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야만족으로 규정했던 사람들에게 지배 당하여 '농노' 로서 중세시대로 넘어가 1000년이 넘게 농노의 신분으로 중세를 살아가게 되지요. 



오늘날 세계 각국의 교과서는 서기 476년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해로 명기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교과서도, 어느 로마사 권위자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해'는 말하지만 '달'과 '날'은 말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건국한 해인 기원전 753년부터 헤아리면 1,229년 뒤에 멸망했다.
천년이 넘는 장수를 누린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622년 전인 기원전 146년에 일어난 카르타고의 멸망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어이없는 종말인가.
로마는 카르타고보다 두 배나 긴 세월 동안, 카르타고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광범위하게, 그리고 거기에 살았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고 큰 영향을 주었지만, 허망하게도 '위대한  순간'은 갖지 못했다.
불타기는 했다. 하지만 화염으로 불탄 것은 아니었다.
멸망하기는 했다. 하지만 처절한 아비규환과 함께 멸망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위대한 순간'도 없이 로마는 그렇게 스러져갔다.  



- 시오노 나나미 - 


 
사업을 하다 보면 대표님의 부인되시는 분, 즉 사모님의 영향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즉 도저히 우리가 영업으로 뚫을 수 없는 곳의 지원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냥 지원정도가 아니라, 너무도 자세하고 친절히 신경을 써 주시길래, 원래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주실 위치에 계신분이 아닌데.. 하고 자세한걸 알아보니

사모님께서 애들 관련해서 그분 부인을 만나고 이야기가 되서 우리를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평소 영업으로 범접하기 힘든 곳에 있는 분을 이리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여자분들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로마인 이야기' 에 나왔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딱히 누구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가 했던 대사 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남자들)지만,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우리 마누라들 아니겠소?"

오 강하도다 여자들의 힘이여, 수쳔년 전부터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ㅎㅎ

얼마전 홍준표 의원의 돌발 영상도 기억이 나는군요. 자신을 돈키호테로 비유하면서 자신을 막아 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 막을 존재는 딱 한가지만 있다. 그것은 바로

" 내 마누라지!"

현명하십니다. 홍준표 의원!


작은 회사로서 노조라는게 있을 턱이 없는 상황이지만, 경영자로서 노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제가 예전에 회사에 연구원으로 있을 때는 그 회사는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회사였습니다. 저는 그래서 회사의 의견이 분열이 안되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그 때 한창 말들이 많은 다른 회사에 존재하는 '귀족 노조'들에 대한 반감으로 더욱 더 노조를 싫어하게 되었지요. "노조는 있으나 마나다. 같은 사원끼리 계급을 지어서 일도 하지 않고 급여를 받아간다." 라는 생각을 했던것 같습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사원인가여? 높으신 분들한테 이러한 글들이 일찍 들어갔어야 했는데요 ^^;;)

그러다 실제로 경영자를 해보고 나니 노조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그러한 생각에 대한 이유로 가장 큰 것을 꼽자면

1. 사람은 일반적으로 상대를 이해하기 어렵다.
2. 가끔은 싸워야지만 진실로 상대를 이해할 수가 있다.

라는 점입니다. 예전 고대 로마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라쿠스 형제

그라쿠스 형제들 입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과 이탈리아 시민권들을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로마 시민권이 별 특혜가 없었을 때에는 이탈리아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로마 시민권을 탐내지 않았으나, 로마 시민권에 특혜가 가중되니 사회 전체에 불평등이 만연하고 로마 사회 자체가 흔들리는 징조가 보였습니다. 이를 간파한 그라쿠스 형제가 개혁안을 꺼냈다가 로마 기득권층의 극렬한 반대로 살해당했습니다. (이때도 로마 빈민층들이 더욱 수구적으로 굴었다고 합니다. 역시 역사는 순환하나 봅니다) 이렇게 로마 기득권층은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강압적으로 대처했는데, 이런것을 못 견딘 이탈리아 연합이 반발하여 내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런 격렬한 전쟁을 2년간 겪더니 결국 로마는 이탈리아 시민권을 로마 시민권으로 전환하는데 기득권층의 열렬한 동의를 얻어서 가결시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때리는 것을 별로 안좋아 합니다. (그런 작자가 왜 게임상에서는 피에 광분해 날뛰냐고 물으신다면 할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말해 주듯이 가끔은 맞거나 싸워야지만 알게 되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회사라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 노사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가지 목표를 향해 나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건강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노 - 사 가 가끔은 특정 주제에 대해서 격렬하게 싸우고, 그리고 바로 화해하면서 (싸움은 길어지면 증오심만 남습니다..) 강건한 회사를 구성하여 한가지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영자로서 노조는 회사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귀족노조는 제가 싫습니다.

참조
 로마인 이야기 3권 (승자의 혼미) :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10267
 

자마전투에서 한니발이 스키피오에게 패한 후  한니발과 스키피오가 우연히 로도스 섬에서 만나 나누었다는
대화다. 12세 연상인 한니발 에게 스키피오가 정중하게 물었다.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장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니발은 즉석에서 대답했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요. 페르시아 대군을 소규모 군대로 무찔렀을 뿐만 아니 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경계를 훨씬 넘어선 지방까지 정복한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고밖 에는 말할 수 없소."
스키피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두번째로 뛰어난 장수는 누굽니까?"
한니발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요. 그는 우선 병법의 대가요. 그리고 숙영지 건설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이기도 하오."
스키피오는 다시 질문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세번째로 뛰어난 장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카르타고의 명장은 이 질문에도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건 물론 나 자신이오."
자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업적으로 '아프리카누스'라는 존칭까지 받은 스키피오 아프리카 누스는 이 말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장군께서 자마에서 나한테 이겼다면?"
한니발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순위는 피로스를 앞지르고 알렉산드로스도 앞질러 첫번째가 되었을 거요."

                                                                             - 본문 중에서 -


'포에니 전쟁'은 '페니키아 사람들과 싸운 전쟁'을 뜻합니다.  포에니 전쟁을 말하면 딱 하고 떠오르는 사람이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입니다. 2차 포에니 전쟁시 로마인들에게는 '로마의 악몽'으로 불리지요.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 7만여명을 몰살 시켜버린 놀라운 전술로 로마에게 초 비상사태를 선언하게 합니다.
사상자 수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자마 전투에서 젊은 로마의 장수인 스키피오에게 패배를 하게 되는 한니발
이지만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스키피오보다 오래 남아 있습니다. 잘 나가던 로마에게 치명타를 가하고 로마가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했던 존재였던 것일까요? 항상 이기던 상승의 장군이여서 그랬을 까요?
사람들의 기억속에 많이 남아 있는 이유를 조금은 심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졌기 때문이다' 입니다. 그리고
'최초' 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처음으로 알프스를 넘었고 처음으로 로마에게 거대한 패배의 쓰라림을 안겨
주었고 로마를 공포로 물들게 했지만, 결국은 스키피오 에게 졌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패장을 더 잘
기억하는 법이랍니다. 승자쪽에서 적이 얼마나 어려운 상대였는지를 논해야 자신들의 승리가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한니발은 오늘날 까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남아 있나봅니다. 물론 요즘 인터넷에서 한니발로
검색하면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ㅅ-;; , 생각해 보니 예전의 A 특공대의
리더 이름이 한니발 이였던 것이 기억이 나는군요. 그래도 저는 한니발이라고 하면 애꾸눈에 로마를
파멸시켜버리겠다고 신에게 맹세한 대로 한쪽 눈으로 분노의 불길이 새어나오며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가츠 인가요..)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트리부니키아 포테스타스'
 (Imperator Caesar Augustus Tribunicia Potestas)

조금 길지만 이 말은 제정 로마의 '황제'를 칭하는 말 입니다. 로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 이라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의 기초를 만들고 그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가 실질적으로 제정의 역사를
이루었지요.

이영도 작품의 '눈물을 마시는 새' 에서 말하길 "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독약을 마시는 새,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 중에서 가장 일찍 죽는 것이 '눈물을 마시는 새' 며, 가장 오래 사는 것이 '피를 마시는
새'라 합니다. 너무나 해로워서 몸밖으로 내보낼려고 하는 눈물을 마시기 때문에 가장 일찍 죽으며 너무나
중요해서 몸 안에만 가지고 있으려 하는 피를 마시기 때문에 오래산다고 하지요. 그래서 '눈물을 마시는 새'는
'왕'을 뜻하며, '피를 마시는 새'는 '제국'을 뜻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을 떠 안는 관용으로 일관한 카이사르는 왕이 없던 공화정 로마시대에 제정의 기초를 마련한
'왕'이 였고, 반대파를 가차없이 숙청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제국'의 초석을 닦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다른 사람을 관용하고 포용할 줄 알았고 유머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해지던 카이사르가 멋진
'왕'으로 느껴집니다. 예전의 기억이지만 다시금 되 새겨 보기에도 카이사르는 정말 뛰어난 인물이였습니다.

 


부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
역자: 김석희

서평을 쓰기에도 부담스러운 '로마인 이야기' 입니다. 나온 시기가 오래된 작품이라서 일까요? 많은 수의
비평가들과 역사학자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서로 보지는 않습니다. 과연 역사서란
무엇일까요?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 과 작가의 견해를 포함한 것을 역사서로 본다면 '로마인 이야기'는
훌륭한 역사서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의적인 해석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보면 또 역사서가 아니겠지요.

그런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2006년 15권을 마지막으로
완간 되었으니 나나미의 평생의 대작이라고도 볼 수가 있지요.

저는 중국사를 좋아해서 예전에 대충 읽고 치워버렸던 책이기도 했는데, 주변에서 너무 재밌다고 하시는 분이
계셔서 예전 책을 다시 끄집어 냈습니다. 9권까지에서 끝나버린 줄 알았는데 15권 까지 나온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도 그 이유중의 한가지가 되겠네요.

역시나 책은 아는 만큼 읽혀진다는 말이 전혀 틀리지가 않는 것이 예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내용중에서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이 많습니다. 커가면서 정치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럴까요? 로마의 정치 체계가 눈에
들어 옵니다.

기본적으로 투표형태는 소선거구에 형태가 가깝고, 2명의 집정관과 300명 가량의 원로원, 그리고 다수의
민회로 구성되어 있는 3권 분립이 되어 있습니다. 일견 허술한 듯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독재관(임기 6개월)을 임용해서 위기를 타파하는 자유로운 운용이 멋진 정치체계 입니다.

많은 대립과 싸움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잘 유지 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인 들이 '명예'를 알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귀족은 귀족답게 평민은 평민답게 자유로운 사고체계를 유지하며
스스로의 '명예'를 존중했기 때문에 일치되는 고민거리에 대해서는 합심 단결 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것들이 요즘 우리 나라와 대비되면서 찜찜함을 안겨줍니다. 우리나라는 '재력' 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급변하는 시대 상황중에서 믿을 만한게 '재력'밖에 없어서 그랬을 까요? 저 역시도
그런 범위의 사람이 아닐까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긴 합니다.

결국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중의 커다란 그림을 위한 진행과정 일런지도 모릅니다. 부제와 같이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탈리아 반도 통일에 무려 500년 가까이 걸렸던 만큼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이루어 나가는 것이 로마같은 대 제국을 일으키는 초석이 됐던 것은 분명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