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글씨가 새삼 화두다. 물론 대입 논술의 여파다. "컴퓨터 시대에 손으로 글씨 쓸 일이 얼마나 있겠어?"라며 자녀의 악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부모들이 논술시험 앞에선 '새가슴'이 된다. 백화점 문화센터는 발 빠르게 '글씨 클리닉' 강좌를 개설했고, 교재 판매로 연명하던 기존 글씨 학원들도 활기를 찾았다. 정말 예쁜 글씨를 쓰는 비법이 있단 말인가? 최근 인기를 끄는 악필 교정 강사들을 찾아가 그들만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쓴 예쁜 글씨를 비치는 종이에 대고 베껴 쓰는 방식으로는 악필을 교정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예쁜 글자의 원리를 익혀 그 법칙에 따라 써야 한다는데. 그만큼 한글이 과학적인 글자란 얘기다.

# 선 긋기가 출발

바른 자세는 예쁜 글씨의 기본조건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필기구 잡는 법을 바꾸면 글씨체가 바뀐다.

필기구를 제대로 잡아야 손놀림이 자유롭고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으며 글씨체도 부드러워진다. 또 오른손이 필기구를 잡는다면 왼손은 항상 종이 위쪽에 둬야 몸 자세가 비뚤어지지 않는다.

필기구 잡는 것을 도와주는 교정용 보조도구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보조도구를 빼는 순간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가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글씨 연습에 가장 좋은 필기구는 연필이나 가늘게 나오는 수성펜(0.5㎜ 이하)이다. 샤프는 글씨를 정성껏 쓸 때 부러지기 쉬우므로 적당하지 않다. 글씨 연습은 신문지 위에 하는 것이 좋다.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인 데다 신문 활자를 기준으로 쓰다 보면 일정한 크기의 글씨 연습이 가능하다. 글씨 연습의 원칙 중엔 '크게 배워서 작게 쓰라'도 있다. 처음부터 작게 연습을 하면 크게 쓸 때 글씨체가 흐트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글씨 연습의 첫 출발은 선 긋기다. 선 긋기만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연습해야 한다. 글씨의 기둥 역할을 하는 'ㅣ'는 쓰기 시작할 때 힘을 주고 점차 힘을 빼면서 살짝 퉁기는 기분으로 빠르게 내려긋는다. 'ㅡ'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힘을 줘 긋는다.

선 긋기 연습이 끝나면 'ㄱ' 'ㄴ' 'ㅅ' 'ㅇ' 을 연습한다. 'ㄱ'과 'ㄴ'은 꺾이는 부분을 직각으로 하지 말고 살짝 굴려줘야 글씨를 부드럽게 빨리 쓸 수 있다. 'ㅇ'은 크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ㅇ'은 글자의 얼굴격이기 때문이다. 작게 쓰면 백발백중 글씨가 지저분하게 보인다.

다음엔 자음.모음 배열법이다. 글자 모양을 '◁' '▷'◇' '□' 안에 집어넣는다고 생각하고 쓴다. 예를 들어 '서' '상' 등은 '◁'모양, '읽'은 '□'모양에 맞춰 쓰는 식이다. 글씨를 이어 쓸 때는 옆 글자와 키를 맞춰줘야 한다. 키가 안 맞으면 보기 흉하다. 글씨를 빨리 쓸 때는 글자에 약간 경사를 주면 된다. 이때는 가로획만 살짝 오른쪽 위로 올리고, 세로획은 똑바로 내려긋는다.



# 논술 글씨 - 최대한 단순화하라

논술 글씨나 고시 글씨는 다른 사람이 읽기 편한 글씨를 빠르게 쓰는 것이 관건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최대한 단순하게 해 연습한 뒤, 이를 원칙에 따라 조립하면 읽기 깔끔한 '논술형 글씨'가 나온다.



원래 한글의 자음은 모음과의 결합 위치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어 'ㄱ'은 'ㅣ'앞에 들어갈 때와 'ㅡ'위에 들어갈 때, 받침으로 쓸 때 등에서 각각 다른 모양이 된다.

하지만 글씨를 못 쓰는 사람에게 그때 그때 다른 모양의 자음을 쓰도록 하는 건 무리한 요구다. 이럴 땐 자음의 모양을 하나로만 정해 경우의 수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ㄱ'은 시계방향으로 약간 돌려 '>'로 쓰면 어느 위치에 들어가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ㄴ'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려 ' '로 쓰면 된다.

또 글씨 쓰는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 'ㅁ'을 '▽'모양으로 바꿔줘도 읽는 데 불편함은 없다.

이렇게 만들어놓은 기본 자음을 연습한 뒤에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조립한다. 글씨를 결합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자음과 모음의 위 아래 길이를 1대 1로 맞춘다. 보통 명조체.궁서체 등 정자체는 모음 길이가 자음의 3배 정도로 길게 써야 한다. 자음과 모음의 키가 같으면 일단 글씨가 가지런해 보인다.

두 번째 법칙은 자음과 모음을 최대한 밀착시키는 것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도 최대한 붙여쓴다. 그래야 중간 중간 못 쓴 글씨가 나와도 묻혀서 넘어간다. 단, 띄어쓰기는 확실하게 한다.

세 번째 법칙은 받침을 작게 쓰는 것. 글씨를 못 쓰는 사람일수록 글씨 크기를 못 맞춰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법칙을 활용하면 글씨 유형이 일정해져서 써놓은 글이 깨끗해 보인다.



◆ 도움말=최명범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강사

('어떤 악필이라도 하루에 OK'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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