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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세트(전8권)

이영도 / 황금가지

"사람을 진정 행복하게 만드는 건 다른 사람뿐이지. 사람을 진정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다른 사람뿐이고, 오직 사람만이 행복과 불행을
생산한다. 정치 체제는 사람들이 생산한 행복과 불행을 이리저리 운반할 뿐
스스로는 쌀알 한 톨만큼의 행복이나 불행도 만들어 내지 못해."
...

"순전히 정치 체제의 우수성만 놓고 말한다면 최악의 폭군이 가졌던 통치
구조도 위대한 성국이 가졌던 것만큼이나 우수한 것이었을 것이다. 불행을
훌륭하게 운반했으니까. 어설픈 통치 구조 가지고는 폭군이 되기도 어렵지."

'눈물을 마시는 새'에 이어 '피를 마시는 새'는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전작에 비해 양적으로는 두배에 가까운 내용을
가지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다만
본문에서도 언급하듯이 '영웅시대'는 끝나고 또다른 영웅들이 출현하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영웅들보다는 존재감이 약합니다.

본문중에 나오는 키탈저 사냥꾼의 유명한 이야기인, 형제새 이야기중 일찍
죽지만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눈물을 마시는 새'와 , 가장
오래사는 이유로 '피를 마신다는 새'

전자는 다른사람의 눈물을 마셔주는 왕에 관한 이야기고 후자는 피를
마시며 자신을 존속시켜가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처음 피를 마시는 새에 대한 뉘앙스는 황제 또는 제국이라
여겨졌습니다. 계속해서 제국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제국에 반기를 들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을 미리 미리 숙청하고 다니는 황제 . 즉 다른
사람들의 피(죽음)를 요구하며 자신을 유지하는 제국,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황제

하지만 제국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존속에는 한계가 있고 , 때문에 이를
영속하는 종교로 만들고자 합니다. 실제로 많은 국가의 형태는 바뀌어 오고
있지만 (지배세력은 언제나 바껴가지요..) 종교는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피를 마셔가며...

같은 배경으로 다른 주제의식을 가지고 쓰여진 글, 피비린내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것들의 피를 갈구하는 새의 모습을 느끼며 책을
읽을 수록. 다른사람의 눈물을 마셔주기 때문에 일찍 죽으며,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눈물을 마시는 새(왕)에 대한 그리움 입니다.

chewed by Notoo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영도




"네 마리의 형제 새가 있소. 네 형제의 식성은 모두 달랐소. 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독약을 마시는 새,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가 있었소. 그 중 가장 오래 사는 것은 피를 마시는 새요. 가장 빨리 죽는 새는 뭐겠소?"

"독약을 마시는 새!!"

 고함을 지른 티나한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 보자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요"

언제나 무덤에서 돌아왔다고 첫글에 대한 코멘트를 다는 이영도 님의 '눈물을 마시는 새'입니다. 저번에 '폴라리스 렙소디'에 이어서 계속해서 이영도님의 글을 보고 있습니다.

평가절하 되기 쉬운 판타지를 문학의 위치까지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 이영도님, 글 자체의 마력이 대단합니다.
 톨킨류의 판타지만 존재하는가? 라는 여론에 답을 하듯이 한국형 판타지를 구상하고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나 '퓨쳐워커' 이후로 내려오는 중심인물이 누구일까 계속해서 유추하게 만드는 스타일의 진행방식이 더욱더 몰입도를 가져오고 그 것이 가져오는 반전을 즐기게 만들게 합니다.

너무 중요해서 몸안에만 가지고 있으려고만 하지 밖에 내보내지 않으려 하는 '피'를 마시는 새는 당연히 오래 살 수밖에 없고, 얼마나 해로우면 몸밖으로 내보낼려고 노력하는 '눈물'을 마시는 새는 일찍 죽을 수밖에 없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눈물'을 마시는 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물을 마셔서 , 일찍 죽는 새가 바로 왕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왕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왕이라고 떠받드는 존재들이 있어야 왕으로서 군림할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떠받들게 하는가? 바로 그들의 눈물을 마셔주기 때문에 떠 받들여 질수가 있습니다.

판타지 문학에서나 가능한 일일까요? 현실의 정치적인 모습이 더욱더 타락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문학에서나 이상적인 왕을 찾아보게 되는 무력함을 느끼지만 , 그렇기에 더욱더 현실에서 '눈물'을 마셔주는 왕을 기대하는 환상을 꾸게 되나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은이: 이영도


멸망은 완성의 귀결 ..

책을 끝까지 읽고나서 이영도 작가가 자주 인용하는 이 귀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끝이 나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중간이기 때문일까? 노래가 불러지는 중간이라면 노래가 완성 된게 아니다. 마지막까지 노래가 흘러가고 끝이 되서야 노래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며, 살아가는 삶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끝이 되서야 전체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망은 바라지 않고 싶다. 다 읽고 나면 아쉬운 랩소디가 머릿속을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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