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성격에는 결함이 있습니다. 90% 에 이르렀을 때 100% 까지 가기가 엄청 힘이 듭니다. 대입 준비할 때 3학년때 내신이 떨어졌으며 시험기간에는 안하던 책상 정리를 시작하고, 중요한 개발 기간때는 예전에 봤던 소설을 다시 꺼내든다던가 갑자기 게임이 엄청나게 땡긴다던지 즉 마감이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회피하려는 결함입니다. 


  재밌게도 이건 저만 있는 특징이 아니더군요. 세상에 이름난 작가들이라고 해도 마감일이 다가오면 일이 손에 안잡힌다고 합니다. 일정의 압박과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 그리고 일이 잘 안 풀릴 때의 미칠것 같은 스트레스를 이겨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건 멘탈이 강하다고 알려진 사람들도 마찬가지 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것을 혼자서 이겨내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훌륭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사람들의 수는 정말 극 소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름 난 천재들 조차 옆에서 조력해주고 지탱해주고 도망갈 수 없게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압박을 이겨낼 수가 없기 때문에 매니져가 필요합니다. 작품 세계에서는 편집자 정도가 되겠군요. 도망갈 수 없게 잡아두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고 일정이 얼마 안남았다고 상기시켜주고 프로젝트 나 작품이 일정 수준의 질을 유지하지 않는다고 쓴 소리 해주고 함께 험난한 길을 가는 동지 입니다. 혼자 모든것을 완성한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이러한 매니져(편집자)같은 동지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 또한 매니져가 있거나 아니면 동지가 있을 때는 정말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일정을 소화한 적이 많습니다. 다만 이러한 동지(매니져, 편집자)가 없는 상태에서는 2개월이고 3개월이고 놀아버리게 되버립니다. 


  이는 사업을 할 때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꼭 동지를 구해서 같이 서로 서로 쓴 소리를 하면서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혼자는 외롭고 지치고 도망치고 싶어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

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 글을 보니 문득 예전에 장자의 내용을 보고 생각했던 포스트 도 생각 나고 , 얼마전에 썼던 '천재와 장인'도 생각이 나는군요. (물론 이만한 필력은 절대 없습니다만..) 

게다가 그림쪽에서는 이 분이 바로 떠 오르더군요. 



"이렇게 되기 위해 얼마만한 스케치를 했을꺼 같은가?" 라며 어설프게 따라하지 말라던 충고도 봤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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